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울의 봄 (문단 편집) == 3~4월 학원 민주화 열풍 == 3월 개강과 함께 학생들은 다른 시위 구호와 함께 '[[어용]] 교수 퇴진'을 외쳤다. 어용 교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난 대학은 3월 말까지 모두 18개교였으며 참가자만 8천여 명에 달했다. 이에 [[김옥길]] 문교부 장관이 "국가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의 이익을 위해 어용한 사람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와 같은 교수들은 각자의 양심에 따라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당시 스스로 물러난 교수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학원 민주화의 바람은 4월 말까지 멈추지 않았다. 4월 18일 문교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학원 민주화 투쟁의 상황은 시위/농성이 진행 중인 학교 중 학원 민주화를 거부하는 총학장 퇴진 요구가 21개 대학, 어용 교수 퇴진 요구가 24개, 재단비리 척결 요구가 12개, 학교 시설 확장 요구가 11개, 학생회 인정 및 학내 언론자유 요구가 20개에 달했다. 투쟁 양상을 보면 총학장실 점거 농성 12곳, 교내 철야 농성 24곳, 가두시위 진출 시도 2곳, 총학장이 사퇴나 사의를 표명한 경우 14곳, 입시휴강 조치 19곳 등으로 나왔다. 4월 24일 서울 14개 대학 361명의 교수들은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사학의 족벌체계 비판, 군사교육 개선책 모색, 재임용제도 철폐, 교수회의 기능 강화, 대학별 교수협의회 구성 등 대학교육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항들이었다. 그러나 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교수들은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한 후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교수들과 함께 해직되었으며 그 수만 87명에 달했다. 이 시기에 복직했던 교수들 역시 다시 강단에서 쫓겨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